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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녁 하늘 아래
각 방 쓰는 부부입니다만, 본문
각 방 쓰는 부부입니다만,
드르렁 드르렁.
베개를 들고 방에서 나와 거실 소파에 눕는다.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휴직 중이었고 남편은 새벽부터 출근을 해야 했으므로 남편의 출근을 배려해서 따로 자기 시작했다. 아이가 다섯 살이 된 이후 종종 합방을 시도하지만 오늘처럼 실패할 때가 많다.
한 때는 저 코고는 남자의 팔을 베고 포르르 잠이 들고 듬직한 어깨에 머리 기대 영화도 보고 마음 기대 울기도 했었는데. 그렇다, 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. 지금은 그냥 넓은 어깨. 건장한 남자 사람의 신체의 일부인 어깨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.
설렘이 사라졌다. 성호르몬의 끌림으로 손 끝만 스쳐도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두근두근했었는데 결혼으로 맺어져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남자와 여자는 정체성을 잃었고 남편과 아내, 아빠와 엄마, 사위와 며느리라는 관계성만 남았다.
각 방을 쓴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.
편안함과 익숙함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에서 느껴지는 만족도가 높다. 남편의 친구들은 우리에게 ‘부부생활 매운맛’의 표본이라고 말한다. 우리는 둘 다 스읍스읍 입술이 얼얼할 정도는 되어야 매운맛으로 인정하는 매운맛 마니아니까, 나쁘지 않다. 부부사이라는 라는 게 그렇게 순한디 순하게 핑크핑크로만 점철될 수는 없는 거니까.
남편은 나보다 네 살이 어리다. 결혼한 지인들에게 말하면 열 살이 많은 남편들도 어린아이 같다는데 네 살이 어린 남편은 오죽 하겠는가. 남편에게 반한 순간 그는 분명 모든 순간 철없는 나를 감싸안아줄 어른임에 틀림없었다. 한 겨울 찬바람이 허벅지에 칼날처럼 박히던 날 수많은 사람들이 전단지를 나눠 주던 할머니의 얼어붙은 손길에 눈길조차 주지 않을 때, 남편은 굳이 사람들을 뚫고 그 앞으로 가 전단지를 또 ‘굳이’ 받아와서 나에게도 건냈었다. 자기라도 받아야 할머니가 빨리 집에 들어가실 수 있지 않냐고 말하는 남편의 그 말이 얼마나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웠는지 모른다.
연애시절, 한 여름 제주 공항에서 나를 배웅할 때 차에 두고온 파우치, 다음에 만날 때 전해 받아도 상관 없었고 버려진다고 해도 조금 아쉽고 말았을 사소한 물건을 ‘그런 것도 안챙겼냐’는 흔한 핀잔 한 마디 없이 다시 가지고 오는 그의 모습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다.
결혼한다고 집에 정식으로 인사를 갔을 때 엄마는 남편을 앉혀두고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.
” 자네, 잘 생각하게. 얘 성격 보통 아녀. 데려가면 인생 조지는 거여. 엄마가 그냥 하는 말이 아녀. 평생 책임질 자신 없으면 다시 생각혀.”
세상 솔직하면서 직설적인 엄마의 경고에도 충분히 감당하겠다고 씩씩하게 답했던 그 때 그 남자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? 지금 같이 사는 남자는 그 때의 그 남자가 아니다. 결혼과 함께 그는 자꾸 큰아들이 되려고 한다.